사이비 사회주의의 불연속적 반복에 관한 고찰

                                                                                박 홍 서

 

'역사는 어떻게 흐르는가?' 어떠한 법칙이라도 있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명확히 대답하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인류가 동물적 생활 습관에서 탈피해서 소위 '이성'을 소유했다는 [사람]으로서 생활한 이래 그들이 만들어 왔던 역사는 그것을 관찰하는 시각에 따라서 발전적이냐 순환적이냐 혹은 거시적인가 미시적인가등 각종의 시각에 의해 여러가지로 구분되어진다. 지금까지 많은 사회과학을 연구하였던 이들은 과연 역사란 무엇이며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과 사고를 통해 규정하려 하였다.

그러나 [역사] 그 자체가 가지는 특수성, 즉 그것을 검증할 만한 그 무엇의 不在로 말미암아서 확정적 이론을 도출해 내기란 쉽지 않다. 다시말해 미래도 역사의 일부분임이 분명할 때 과연 그것을 검증할 만한 그 무엇이 존재하겠는가? 또한 과거를 검증할때 그 잣대가 과연 어떤 시각하에서 세워진 것인가 하는 문제가 파생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인식의 어려움을 발전적으로 인지하면서 사회 과학도로서의 탐구정신을 갖고 역사에 접근한다면 분명 새로운 사고가 가능할 것이다.

아래에서는 거시적 역사관의 기본틀안에서 계급사회를 고찰하며 그 중간에 나타나는 신비주의의 불연속적 반복을 설명하고 결론적으로 20C의 사회주의 본질의 설명과 미래 세계에 대한 예측을 논의하고자 한다.

역사인식의 재고(Marx이론에 대해)

우리가 역사를 관측하는데 있어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의 하나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각 단편부분의 연계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부분만을 관찰하는 것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상술한 바와 같이 역사를 거시적 혹은 미시적이냐로 분석할 때의 미시적인 시각은 전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단편적 분석이란, 몇가지의 발생가능한 단순사건만을 개별적으로 나열하면서 관찰자 자신이 바라는 역사속에 꿰여 맞추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서 좀더 일관되고 연계성이 있는 분석을 해야 하는 것이다. 토인비의 논의는 윗글을 부연해 주고 있다.

 "역사연구에 있어서 최소한도로 타당한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전체적인 사회(문명권)이지 근대 서구 국가나 그리스, 로마의 도시국가 같은 임의로 절연시킨 문명권의 단편이 아니라는 것이며 모든 문명이라는 것은 병행하고 동시대적인 것이다(1)

 실례로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분규 특히, 민족분쟁과 같은 사건들을 계급사회의 총체적 모순의 표현이라고 분석하기 보다는 20C 이데올로기 대립체제 붕괴후의 파생되어진 하나의 과도기적 상황의 표현일 뿐이다라는 분석이 훨씬 더 타당한 것이다.

Marx이론이 최근에 와서 많은 난관에 부딪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 역사규정의 독특성과 그러한 역사인식을 통해서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사회를 구성하려고한 인간적인 소망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Marx이론이 궁극적으로 이루려고 했던 무계급사회에 한가지 주의를 두고자 하는데 그것은 변증법에 기초한 유물사관 아래서 어떻게 궁극적인 최후단계가 나타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즉 역사발전을 논지함에 있어 최후단계의 결정체에 얽매이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다. 실례로 20C의 사회주의도 Marx이론에 의거 궁극적 무계급사회로 나아갈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결국 계속되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붕괴하게 된 것이다. 즉 Marx이론은 자신의 이론에 의해서 자신이 공격당하는 이론적 딜레마에 빠져 버린 것인데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Marx이론을 단지 하나의 연속적 발전이론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떠한 순환적 틀속에서의 발전이론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계급사회 발전

인간의 역사에서 '계급'의 존재를 빼놓는다면 역사 자체가 공허해 질지도 모른다. 즉, 계급의 존재는 역사를 이끄는 구심점으로 작용하였다. 토인비의 말을 다시 인용해 본다.

"계급은 5,6천년전 원시적인 인간생활의 수준선상에, 몇개의 문명이 처음으로 그 모습을 나타낸 이래 언제나 인간생활을 떠난 적이 없고 항상 무시할 수 없는 질환 이었다" (2)

계급을 발생하게 하는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나 무엇보다도 인간의 권력욕이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다.

"고대이거나 현대이거나 간에 역사를 올바르게 해석하려면 사회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권력에 대한 애착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사회과학에서 연구해야 할 변화들을 발생시키는 주요 동기가 곧 권력욕이기 때문에..."(3)

한편 계급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한데 아래의 [공산당 선언]에서 보여지듯 Marx 이론에서는 계급 투쟁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의 장인과 직인, 요약하면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상 대립하여, 대로는 은폐된 형태로, 때로는 공공연한 현태로서 끊임없이 투쟁을 전개하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은 언제나 사회 전체의 혁명적 개조로 끝나든가 혹은 상호 적대하는 계급의 공동멸망으로 끝났다"(4)

이에비해 물질적 및 이념적 이익보다는 인간의지에 더욱 중점을 두었던 막스베버는 '교리와 신앙'이라는 관점에서 계급관게를 파악한다.

 "Marx Weber는 이것들이 모두 교리와 신앙에 터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종교적 이유 때문에 특정 집단이 생기고 사회 구성원의 행위를 일정 방향으로 규제하고 특정 사회 질서를 유지 또는 변형시켰다는 것을 찾아냈던 것이다. 여기에 여러 신분 집단, 곧 무사, 봉건 귀족, 지식인과 같은 집단이 "선택적 친화성"에 의하여 이념적, 물질적 이해 관계가 엇물려 사회 행위와 사회 질서가 빚어져 나왔다는 매우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분석의 모범을 남기고 있다"(5)

인간의 역사를 계급사회의 연속적 형태로 볼때 이런 계급사회는 시대구분에 따라서 그 계급을 발생케 하는 매개체를 나타내는데 그것이 물질적 요소인가 아니면 인간의지인가를 불문하고 공통점은 계급간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매개체는 역사발전을 통해 타파되어지고 그것은 다시 다른 형태로 변질되어서 존속되어진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다분히 변증법적 시각은 경험적인 역사관찰로써 입증되어진다.

 서구 古代史를 유물사관의 계급구분 방식에 의해서만 살펴보면 결국 '노예'라는 생산수단(계급매개체)의 소유여부등에 의거 사회계급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외의 중요한 변수들 - 민족적 차별성, 군사력의 장악등 - 이 존재하기도 하나 '노예'를 중심에 올려 놓으면 노예제도의 한계에 봉착하면서, 다시 말해서 노예제로 인해서 파생된 계급사회의 모순이 타파되면서 중세 봉건시기로 넘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한계와 타파를 하나의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하면 좀더 유연하게 아래의 사실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노예제도가 우리의 도덕적 감정을 거슬리게는 하지만, 노예제도에 의존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로마 문명의 전반적인 몰락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노예가 충분하게 공급된다면, 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노예노동으로 충당하지 못할 이유는 명백히 없다. 그리고 로마가 정복을 계속했던 동안에는,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수 많은 포로가 노예 시장에 흘러 들어왔다. 하지만 1세기 말에는 정복 사업이 마무리됨으로써, 새로운 포로 노예의 공급이 중단되었다. 노예노동은 점점 더 부족해지고 비싸지게 되었으나, 모든 육체 노동을 노예의 직분으로 여기고 있던 로마 사회는 창조적인 기술 혁신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술 혁신을 이루어 내지 못했다. 서부에서 로마 제국의 조직이 무너지게 된 가장 단순한 원인으로는 변경 방어에 필요한 군사력과 효율적인 중앙정부의 유지에 필요한 관료제를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노예의 공급이 부유하거나 생산적이지 못했음을 들 수 있다"(6) 따라서 노예와 소유여부는 더 이상 계급구별의 매개체가 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古代社會를 구성하는 계급사회는 봉건시대로 접어들게 되는데 古代 노예제라는 계급관계를 타파한 中世 봉건시대는 또한 새로운 계급매개체에 의해 계급사회가 형성되어 간다. 중세 봉건계급사회를 분석하는데 '장원경제'라는 물질적 매개체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세 기독교에 대한 장악여부이다. '암흑시대'로 표현되는 중세에 있어 宗敎(=기독교)의 힘은 실로 엄청났는데 전 사회체계를 지배한 '종교'에 대한 장악력의 대소에 따라 중세계급사회가 구분되었다. 그러나 십자국 원정이라는 중세 계급사회 모순의 극점을 통하면서 결국 기독교에 대한 장악여부는 더이상 그러한 매개체가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중세의 예술과 문학, 그리고 모든 제도들은 모두 공통된 종교적 신앙에 뿌리박고 있었다. 따라서 그 신앙이 무너져버리면, 전사회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중세적인 형태의 기독교에는 전 교회의 구심점이 될 교황청과 그럴듯하게 크리스트의 地上 대리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교황이 아주 분명하게 필요했다. 그러나 13세기 말로부터, 로마 교회는 그 전통적인 역할을 수행할 능력을 점점 더 상실해가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교회가 당시의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복잡하게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한 세속사에의 개입은 서구 기독교의 전통이 되어 있었으며, 잘하면 폭군의 악정을 저지하거나 부패한 제도의 개혁을 촉진시킴으로써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많은 당대인들의 눈에 13세기의 교황들이 기독교 사회에 봉사하기 보다는 기독교 사회를 지배하려는 방향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여겨졌다는 데 있었다"(7)

그후 중상주의를 표방하는 절대왕조의에 의해 자본주의의 씨앗이 뿌려지면서 다시금 서구사회는 '富'라는 개념이 계급구분의 기준이 되어간다. 산업혁명을 통해 급격이 발전된 서구자본주의는 빈익빈부익부라는 계급상호간의 모순이 점차 증가하게 된다. 결국 극대화된 자본주의의 모순은 19C말∼20C초에 이르는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변질되어 갔고 세계대전이라는 폭발점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계급구분 매개체의 중요요소인 富(=資本)가 과거에 비해 더이상 계급구분의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현재 자본주의 모순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라는 주장도 가능하나 상술한 바와 같이 역사의 거시적 인식을 통한다면 현재의 역사는 富를 매개로 하는 계급관계가 점차적으로 소멸함과 동시에 새로운 계급구분 매개체의 등장을 목도하는 시기인 것이다.

상술한 바를 변증법적 시각을 빌어 정리하자면 게급이 산출한 불평등은 제모순으로 인하여 평등화 되고 그것은 제상황과 결집해서 다시 불평등한 새로운 모순을 만들어 내는 '평등과 불평등'의 연속인 것이다. 바로여기 '불평등에서 평등'으로의 과정에서 우리는 '신비주의'의 출현에 주목해야 한다.

신비주의의 출현

신비주의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극대된 계급사회의 모순을 제거하고 계급구분의 매개체에서 벗어나려는 사상 및 체제이다. 이것 역시 역사적 검증이 가능하다. 첫번째, 실례로 들수 있는 것이 古代 그리스의 참주정치이다.

"최초의 참주들은 귀족정부에 대한 반란의 지도자들로서 환영받았다. 그 분명한 예가 킵셀로스(Kypselos)였다. 그는 650년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코린토스의 바키스족을 타도하면서, 귀족들을 살해·추방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그러나 초기의 보다 확실한 사례들에서처럼 참주가 처음에는 현실적인 요구에 부응하고 있었던 반면, 그의 일인 통치가 지속됨에 따라 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반발도 점차 거세어져갔다. 그래서 2세대 이상 존속한 참주정은 거의 없었다. 혁명의 모범은 불순한 권력을 부추기기 때문에 그 자체에 위험이 따랐던 것이다"(8)

中世로 접어 들면서 기독교의 세속화로 대변되는 계급사회의 모순의 정점에서 반계급투쟁이 나타나는데 14C 유럽에서 출현한 '종교적 신비주의'가 그 것이다.

"그러나 유럽은 대개 - 정도는 각기 다르지만 - 기존 교회의 교황지배 체제에 적대적인 새로운 종교적 움직임들로 말미암아 다시금 종교적 활력에 휩싸이고 있었다. 대부분 개인적으로 신비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이끌었던 그러한 움직임들은 독일과 저지대 지방( the Low Countries )에서 특히 강력하였다.···그러나 신비주의에 입각한 경건운동들은 제도화된 교회에게는 언제나 골칫거리이기도 하였다. 종교는 사상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며, 진정 위대한 교인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감정에 의해 움직였다.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 열정적인 개혁가나 성공적인 설교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개인적인 강렬한 종교적 체험에서 자극을 받았다. 그러한 인물은 성인일 수도 있었지만, 종교적 히스테리에 곧잘 휩싸이고 게다가 민중선동의 재능까지 타고난 자기 기만적인 광신자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신비주의는 쉽사리 이단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무아경의 명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추구하는 자는 기존의 매개체인 교회를 도외시하기 십상이었 던 것이다"(9)

東洋에서도 신비주의의 경험을 찾을 수 있는데 中國의 新 나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전한이래로 내부의 계급대립은 심화되었으며 해외영토확장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사회문제를 파생시키면서 인민의 생계는 점점 곤란해룶다. 왕망은 이러한 모순을 타파하고자 하였는데 그것들은 혁명적인 정책이었다..."(10)

왕망의 新政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토지를 균등이 배분하고 노예의 수를 제한하며 빈민자를 구제하는 것들 이었다. 그러나 왕망의 新나라는 너무나 급격한 사회개혁을 추진하였기 때문에 결국 기존의 호족세력등에 의해 얼마가지 않아 붕괴되었다.

20C의 사회주의 체제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라는 물음은 상술한 바에 의해 충분히 대답되어질 수 있다. 즉, 그것은 불연속적으로 존재했던 신비주의의 하나일 따름인 것이다. 산업혁명등을 통한 자본주의 발전은 반대로 자본주의 라는 계급사회모순, 즉 富를 둘러싼 계급대립을 한층 심각하게 만들었는데 상술했듯이 그것은 제국주의와 세계대전등을 통해서 폭발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사회주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도출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도 결국 개인의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서 소멸되어 버렸다. 물론 인간본성에 대한 고찰에 대해 Marx주의는 서구 정치학의 유산물이라 비판하고 있지만, 실례로 소련의 스탈린 체제, 중국의 모택동 체제, 또한 북한의 김일성 체제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간 본성의 개조작업 - 각종 어록의 교시작업등 - 을 강행한 사실을 든다면 인간본성에 대한 접근이 단지 서구정치학만의 접근이 아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재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도 등소평의 '지금 중국에서의 가장 큰 모순은 계급모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물질적 욕구에 부흥할 수 없는 것이다.'라는 담화에서 알 수 있듯 인간본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의도의 하나인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를 간단히 아래의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림에서 ab, de로 표시되는 선은 계급사회의 모순이 심화되는 부분이고 bc, ef는 반대 그 모순이 해결되어지는 부분이다. 한편 b,e,h점은 계급사회 모순의 최극점이 되는데 이 점에서 전쟁 내지는 기타방법에 의해 모순이 폭발하면서 모순해결기로 접어들게 된다. 앞에서 말한 신비주의 사상은 바로 bc,ef부분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결국 人的요소에 의해 소멸되면서 동시대에 나타나는 계급사회의 모순 해결 노력에 영향을 끼치면서 모순의 최저점시기 - cd, fg - 의 커다란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 실례를 든다면 中世의 신비주의적 사상이 결국 프로테스탄트 종교윤리에 영향을 준것이나 20C 사회주의가 자유방임주의적 자본주의의 모순을 일정정도의 국가 개입을 통해서 해결하는 수정자본주의로 나가게 했다는 점이며 그 후에 나타나는 커다란 발전 - cd, fg - 이란 참주정치 후에 꽃을 피운 古代 그리스의 철학사상이나 중세 르네상스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제언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예측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하는 자문을 하면서 또한 무책임한 예측이란 비난도 무릅쓴다면 우리들은 의외로 간단한 추론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역사에는 법칙이 있으며 역사는 그 법칙에 의거 흘러간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역사법칙을 탐구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궁극적 목표가 될 것이라 가정할 飁 올바른 역사인식이 인간의 제행동에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올바른 역사인식은 과거를 반성하게 하고 인간본성의 근본적 개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계속될 새로운 계급사회의 모순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이 인간의 본성 개조를 위해 광분하는 것보다는 계급사회의 존재를 검허하게 인정하고 계급사회의 모순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느냐에 촛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비관적으로 보고 있고 Marx주의 이론가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지금도 심화되어 가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상술한 역사인식하에서 바라본다면 비관적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다시말해 자본주의 모순 즉, 부의 불공평한 배분문제는 해결되어 질 것이고 이런 문제는 한 국가안에서만의 일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남북문제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기대된다. 물론 그 정확한 시기를 산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21C만큼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해결된 사회의 커다란 발전시기가 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미래사회를 낙관적으로만 보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러한 발전시기를 거쳐 언젠가는 새로운 계급사회의 모순이 심화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계급사회의 매개체로서는 최근에 예견되어지는 지식이나 정보등도 충분히 그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서 그림에서 나타나는 법칙성에 의거 인간 최후의 사회모습에 대해 감히 예측하자면 가속되어지는 과학 문명내지 사회발전으로 인해서 각계급사회의 폭이 점점 좁아질 것이다. 즉,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한 계급 모순도는 항상 수평을 유지한 상태에서 계급사회의 폭만이 좁아지기 때문에 종국에는 계급모순의 최대점과 최소점이 공유되는 사회가 형성될 것이다. 그렇게되면 계급사회의 발전과 폭발이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상태]로 들어갈 것이며 그러한 [원점]에서 다시 인간들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려는 역동성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

(1) 아놀드 토인비 지음, 최혁순 옮김, 『역사는 인간의 편인가』 (서울: 인문당 1981) p. 138.

(2) 위의 글, p. 152∼53.

(3) 버트란드 러셀, 안정효 옮김, 『권력』 (서울: 열린책들, 1988) p14

(4) 小谷江之 外 지음, 조금안 옮김, 『현대역사과학 입문』 (서울: 한울, 1986)에서 재인용

(5) 박영신 지음, 『역사와 사회변동』 (서울: 한국사회 연구소, 1981), p. 172.

(6) 타이어니 지음, 이연규 옮김, 『서양 중세사』 (서울ː 집문당, 1986), p. 24.

(7) 위의 책, p. 470.

(8) 앤트니 앤드류스 지음, 김경현 옮김, 『고대 그리스사』 (서울: 이론과 실천, 1987) , p. 86∼87.

(9) 타이어니 지음, 앞의 책, p. 482.

(10) 周 谷城 지음, 『중국통사』 (산서성: 산서인민 출판사, 1986), p. 161.

 

<참고 문헌>

아놀드 토인비 지음, 최혁순 옮김. 『역사는 인간의 편인가』. 서울: 인문당, 1981.

버트란드 러셀 지음, 안정효 옮김. 『권력』. 서울: 열린책들, 1988.

小谷江之 外 지음, 조금안 옮김. 『현대 역사학 입문』. 서울: 한울, 1986.

박영신 지음.『역사와 사회변동』. 서울: 한국사회연구소, 1981.

타이어니 지음, 이연규 옮김.『서양중세사』. 서울: 집문당, 1986.

앤트니 앤드류스 지음, 김경현 옮김.『고대 그리스사』. 서울: 이론과 실천, 1987.

周谷城 지음.『중국통사』. 산서성: 산서인민출판사, 1986.

즈비규뉴 브레진스키 지음, 최규장 옮김.『통제불능의 세계』. 서울: 을유문화사, 1993.

박상섭 지음.『자본주의 국가론』. 서울: 한울, 1992.